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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순장 노트 작성
* 필수입력항목
순장노트
주는 자의 복
이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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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2 신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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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2
1. 성경 본문 연구
31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 너희가 일깨어 - '깨우다'를 뜻하는 '그레고레오'의 현재 명령법으로 '방심하지 말고 계속 깨어 있으라'는 뜻이다. 배교의 시대의 성격을 예견한 사도가 파수를 보는 데 정신을 차려서 최선의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 기억하라 - 모세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훈계할 때 자주 사용한 표현이다. 바울 자신이 삼년 동안의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주님을 섬기고 각 사람을 가르친 것을 기억하여 그 본을 받으라는 권면이다. 언행 일치한 지도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감화력 있는 교육 방법이다.
32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현대인의 성경) 이제 내가 하나님과 그의 은혜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의 믿음을 든든히 세우고 모든 성도들이 얻는 하늘 나라의 축복을 여러분에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 마지막에 바울이 부탁한 것은 바울의 모범도 지도자들의 충성스러움도 아니었다. 이런 것들은 교회를 세워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방도 도구일 뿐 근본적으로는 교회를 배교의 세력에서 지키지 못할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바울은 안전의 원천을 알았으니 곧, 주와 그분의 말씀이었다. 왜냐하면 인간 지도자들의 모든 수고를 쓰셔서 친히 교회를 세워가시는 분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때 그 방법은 오직 말씀으로이다. 그 말씀이 능력이 있어서 교회롤 모든 악의 세력에서 지켜주고 거룩하게 서 가게 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교회가 누구의 교회이며 무엇으로 교회가 거룩하게 서 갈 수 있는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이다.
33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 자신의 자랑으로서가 아니고 교회 지도자들이 탐욕을 경계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34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 모든 복음 전파자들이 자급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가 그 수고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고전 9:14). 여기 바울의 경우는 당시 반대자로부터 탐욕을 위해 일한다는 어떤 빌미도 잡히지 않기 위한 특별한 예이다. 따라서 바울 역시 생계비를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었지만 그 권리를 다 주장하지 않고 손수 일했다는 것을 밝힌 것뿐이다.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 바울이 인용한 주님의 이 말씀은 복음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씀은 복옴서에 나타난 예수의 사상과 행동에 그 정신이 이미 나타났으며 바울은 이 말씀을 구전을 통해서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전부 다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 예수의 말씀으로 지금까지의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향한 권면의 결론을 삼는다. 그리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우라 한다. 여기서 '약한 사람들은 영적인 면에서 믿음이 약한자, 경제적인 면에서 빈궁한 자, 병들고 신체상의 약점을 가진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
* 바울의 위대한 정신은 주려는 정신이다. 바울은 자신을 본받아 장로들이 신자들을 돌볼 때 물질적인 보답을 생각하지 말고 값없이 헌신할 것을 당부하였다. 더 나아가 오히려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거니와(눅 6:38) 바울은 종종 자신의 윤리적 교훈을 예수의 가르침과 연결시켰다(롬 12-14장;살전 4:1-12;빌 2:5-11). 복음 사역자로서의 바울의 삶은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예수를 전적으로 따르는 삶이었고 신자들은 바울을 모본으로 하여 희생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이었다.
36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 지금까지 경고하고 권고한 것의 최종적인 결론으로서 기도로 마감하는 모습이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축복으로써만 신령한 열매를 거둘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37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2. 마음의 문을 열며
그리스도인에게는 '주는 것'이 영적인 본능입니다. 왜 그럴까요? 주는 것이 삼위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호흡을 주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사 42:5). 성자 예수님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주셨습니다(딛2:14).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롬 5:5),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5:22-23).
그런데도 죄로 부패한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받는 것에 익숙한 죄의 중력에 맞서 새로운 영적 본능인 '주는 것'에 자연스럽게 작동하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복임을 각성하고 주는 것을 거룩한 본능으로 우리의 몸에 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말씀의 씨를 뿌리며
1번 문제 :
관찰질문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35절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2번 문제 :
해석질문
2 우리는 주고받는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제한하여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주는 것”은 물질을 넘어 훨씬 더 깊은 차원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바울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것을 살펴보고, 진정으로 주는 삶을 살기 위해 가져야 하는 태도를 말해보세요.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본절은 앞에서 빌립보교회의 일치를 위해 '겸손'을 권면한 것에 대한 예증으로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전환절이다. 그리스도는 궁극적인 모델로서 이 땅에 오셔서 '겸손'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모델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권면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자기를 부정하심으로 십자가를 지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서로가 겸손하고 자신을 부정할 때 다툼이나 허영은 사라지고 '교회의 일치'를낳게 될 것이다.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혀 그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사람에게도 예속되지 않았다.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곧 완전한 자기 포기를 의미한다. 즉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이 없어져도 좋다는 뜨거운 사랑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안전하다는 내용이다. 특별히 '땅'에 대비되는 '하늘'은 그 안전성의 차이 뿐 아니라 그 영원 '지속성과 거룩성 및 무한한 가치성에 있어서 땅에 쌓아 둔 보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 '하늘의 보물'이란 이 땅 위에서 행한 선한 일로서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면 그 무엇이나 해당된다. 즉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 남을 용서해 주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은 보상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 된다. 또한 남들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자기 소유를 타인을 위해 기꺼이 투자하는 것 등도 하늘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 재물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땅에 쌓인 재물과 보화가 최상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겼다가는 훗날 큰 화를 만날 수 있다. (2) 탐욕이 가득한 자들은 지상의 재물에 애착을 느끼고 그것을 위해 살고 있으나 신자는 하늘의 것을 사모해야 한다. (3)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때 이런 것이 우리를 구할 수 없다. (4) 재물이 그리스도인에게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을 풍족히 소유해야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어야한다.
3번 문제 :
해석질문
3 진정한 베풂은 무엇보다 주는 자의 복에 눈이 열려야만 기쁨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주는 자가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다른 사람들의 곤궁을 구제하기 위하여 공급할 수 있는 모든 선물을 주라는 뜻이며 또한 받기를 바라기 이전에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서슴없이 베푼 모든 사람들에게 마지막 날에 은혜와 영광으로 갚아 주시며, 줄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주신다. 즉 굵은 콩 사이로 작은 조나 깨를 섞듯이 조금도 빈틈없이 누르고 흔들어서 채울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채워서 준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그 이상으로 임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해 주는가에 따라 그대로 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그리스도께서 이같은 은혜를 주신 것은 그 은혜를 받은 자도 그분이 하신 일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은 마땅히 자신들의 부요함을 포기하여 가난한 성도들을 유익하게 해야만 했다.
4번 문제 :
느낌질문
4 다음 글을 읽고 주는 자의 복을 묵상해보세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는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고, 다른 하나는 “내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입니다. 이에 대해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1520년에 쓴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것들이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나와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 좋은 것들은 우리에게서 흘러나와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우리 속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며, 이것은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나로부터 반드시 또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삶이란 지갑의 척도가 아니라 영혼의 척도입니다."
5번 문제 :
적용질문
5 옛 자아는 받는 것이 본성이요, 예수님을 믿고 얻은 새 자아는 주는 것이 본성입니다. 왜냐하면 옛 자아는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 체질입니다. 그러나 새 자아는 베풂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풂은 복음의 신비를 깨달은 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드림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예수님처럼, 당신은 이웃을 위해 무엇을 나눌 수 있습니까? 당신의 결심을 나눠보세요.
4. 삶의 열매를 거두며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 4:7)라는 말씀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 말씀들은 베풂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이기에, 우리도 우리의 이웃과 형제를 위해 거저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베풂의 대척점은 탐심입니다. 그리고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골 3:5). 우리 속의 집요한 탐심을 꺾고, 주는 자의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5. 기도 제목과 마침 기도
6.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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