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하루 동안 느끼는 수많은 감정의 대부분은 이성적으로 깊이 고뇌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상황과 환경에 반응하여 내면의 필터가 순간적으로 찍어낸, 내가 통제하거나 막을 수 없는, 일차적인 자동 감정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은 상황과 자동 감정 중간에 자동 사고가 관여하는데 일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우리는 중간 과정을 인지하지 못하고 감정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고 느끼게 됩니다.
내가 과거에 겪은 상처나 핵심신념이 필터가 되어, 특정 상황을 만나면 자동으로 특정 감정을 찍어내는 것입니다. 즉, 자동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촉발되는 자동감정의 종류가 결정됩니다.
만일 자동생각의 '인지적 오류'가 있다면 안경의 왜곡된 렌즈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실제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거나 절망적으로 보이고, 결국 그에 따른 '왜곡되고 과장된 자동감정'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왜곡된 자동 감정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부터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옛 사람의 '정서적 습관'이자, 바울이 말한 내면의 '견고한 진'일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믿는 사람이 순간적으로 미움이 훅 올라올 수 있지?", "왜 이렇게 염려가 자동으로 생기지?" 하며, 일차적 자동 감정 자체를 죄로 여기고 자책하곤 합니다. 자동감정은 죄의 결과라기보다 우리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등에 가깝습니다.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는 마틴 루터의 이 유명한 말처럼, 진짜 영적인 씨름은 그 자동 감정이 내 마음에 둥지를 틀고 앉아 '이차적인 부정적 감정'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다스리는 데 있습니다.
감정이 욱하고 올라올 때, 정죄하기보다, 내 안에 지금 어떤 왜곡된 자동생각이 지나갔기에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 왜곡된 감정이 요동칠 때, "아, 지금 내 생각에 오류가 작동해서 감정이 속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의 폭풍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게 됩니다.
자동생각 뒤의 '인지적 오류'들은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성품이나 내 정체성에 대한 거짓말"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 인생은 완전히 끝났어." 라는 왜곡된 자동생각 뒤에는 "하나님은 이 상황을 선으로 바꾸실 능력이 없어." 라는 하나님의 전능과 선하심을 부인하는 영적 거짓말이 숨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날 무시하는 걸 보니 난 가치 없어." 라는 왜곡된 자동생각 뒤에는 "내 가치는 사람들의 평판에 의해 결정돼." 라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영적 거짓말이 숨어 있습니다.
"이 일은 무조건 잘못될 거야, 불안해." 라는 왜곡된 자동생각 뒤에는 "하나님은 나를 돌보지 않으실 거야." 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부인하는 영적 거짓말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매일 아침 안경을 닦듯, 내 생각의 렌즈인 인지체계를 '말씀과 성령'으로 닦아내는 것입니다. 왜곡된 인지적 오류의 회로를 차단하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상황을 다시 해석하는 것입니다.
자동 감정이 올라올 때 "아, 내 안에 또 옛 사람의 자동 회로가 켜졌구나"라고 알아차리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그 감정의 해석권을 진리의 말씀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자동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지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선택을 내리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대부분의 감정이 일차적으로 자동으로 찾아온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내가 믿음이 없어서 이 모양인가'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그 자동 감정을 하나님 앞으로 들고 나갈 '가공되지 않은 영적 재료'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스치는 자동생각의 길목을 지키고 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파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건강한 감정 관리입니다.
